[마츠하나] 남자와 아이 1
*적국 약제사 마츠카와x피란민 하나마키
*전쟁 배경
*사망소재有
*****
한 떼거리의 피란민들이 국경 부근으로 피란을 떠나고 있었다. 누군가의 부모 뻘 되는 자들은 한 번 경험했던 일이기에 덤덤했던 것인지, 끔찍한 악몽이 다시 반복되었다는 사실에 충격 받은 것인지 체념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피란민들이 걷는 거리는 적막하기 그지없었고, 간혹 들리는 어린 아이들의 공포에 젖은 울음소리는 그 부모나 근처 사람에 의해 금세 잦아들었다. 제 가족의 손을 꼭 붙든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한 아이는 홀로 피란민들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짐처럼 보이는 물건은 있지도 않았고, 한 손에는 소중한 물건인 냥 꼭 쥐어진 목패 두 개만이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빵 한 조각만이 들려있었다. 얇은 천으로 된 망토의 모자 사이로 삐쭉 튀어나온 분홍빛 머리는 흔히 볼 수 있는 머리색은 아니었다. 많아 봤자 10살 남짓한 나이로 보이는 그 아이에게 빠른 피란민 행렬을 따라가기란 벅찬 일이었다. 잿빛으로 얼룩진 아이의 얼굴에서 유일하게 또렷한 색을 발하고 있는 녹색의 눈은 피란민들의 발끝을 향해 있었다. 놓쳐서는 안 된다는 얼굴을 하고 아이는 쉬지 않고 피란민 행렬을 뒤따라갔다.
-
송[松]제국과 화[花]국은 이웃한 나라였다. 송의 대륙 정벌을 위해 화를 침입하였다. 전쟁은 수년 간 이어졌으나, 송의 성급한 침입으로 인해 화를 정벌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다만, 전쟁의 장소가 되었던 화국은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군사력 및 국가 재정이 크게 하락하게 된 것. 차츰 화가 국력을 다시 회복하고 있을 무렵, 송에는 선왕이 죽으면서 제 2왕자가 반란을 일으켜 제 1왕자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왕위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아버지가 다 이루지 못한 정복 활동을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표적이 된 나라는 단연 화국이었다. 전쟁이 끝난지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전쟁이 일어난 것. 화국에 승산은 없었다. 화의 남성들은 대부분 강제로 징역되었고, 여성과 노인, 어린이는 송과 떨어진 국경 부근으로 피란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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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피란민 행렬은 다 피란을 떠난 것인지 아무도 없는 한 마을에 멈추어 서서 하룻밤을 묵었다. 아이는 입구 부근에서 잠을 청했는데, 눈을 뜨니 해가 중천에 있었다. 마을은 고요하고 싸늘했다. 사람을 찾기 위해 마을 곳곳을 뒤졌지만,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제 가족 챙기기 급급했던 피란민들은 혼자 잠들어 있는 아이를 챙길 여유 따위는 없었던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마을에 오뚝하게 서 있는 아이는 두 눈을 끔뻑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눈망울은 촉촉해지더니 이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엉엉 울지도 못하고, 한참 동안 아이는 숨죽여 끅끅 소리를 내며 울었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했던 아이는 이미 굳어 딱딱해진 빵을 입에 넣었다. 눈물 젖은 굳은 빵은 참 맛도 없었을 터였지만, 아이는 단숨에 다 먹어치웠다. 제법 오랜 시간 잤지만, 계속 울은 탓에 아이는 피곤함이 몰려왔다. 겨울이 아닌 것이 피란민들에게는 큰 행운이었지만, 가을은 얇은 천 하나만을 걸친 아이에게는 추울 수밖에 없었다. 추위에 떨며 아이는 잠에 들었다.
아이가 다시 눈을 뜬 것은 고소한 음식 냄새 때문이었다. 추위는 가시고, 아이의 몸에는 낯선 담요가 덮여 있었다. 아이는 담요를 들고 냄새의 출처를 따라 허름한 집 밖으로 나왔다. 아이의 눈앞에는 한 남자가 불을 피우며 음식을 하고 있었다. 시선이 느껴졌던 것인지 남자는 고개를 들어 아이를 쳐다보고서, 이내 미소 지었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음식 냄새에 이끌려 남자의 옆에 터벅터벅 걸어가서 앉았다.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스프를 그릇에 담아 아이에게 건네었다. 아이는 고맙다는 말할 틈도 없이 허기를 달래기 바빴다. 두어 그릇을 비운 아이는 그제야 남자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형, 송국 사람이죠?" 아이가 처음 꺼낸 말이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송의 사람인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았다. 답은 뻔했다. 성인 남자는 전부 전쟁을 하러 갔으니 화에서 몸이 멀쩡한 성인 남자를 보는 일은 전쟁이 일어나고 한 번도 없었다고.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서 잠시 생각하는 듯 보이다가 답했다. "전쟁은 끝났어." 아이는 슬프다든지, 기쁘다든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럼, 우리 나라에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거네요. 여기는 화국 궁정에서 엄청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닌데 전쟁 소리를 듣거나 군인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응, 뭐 그렇지. 아버지가 군인이야?" "몰라요. 부모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자세히 들은 적은 없어요." 남자는 아이의 부모님이 아마 전쟁에 참여했거나, 혹은 아이를 버리고 떠났다고 생각했다. "왜 여기 혼자 있어?" "피란민 무리를 따라 왔는데 자고 일어나보니 저만 남아있었어요. 형을 만나 다행이에요." "음.. 어디로 가는 중이었는데? 나도 어차피 화의 국경 근처 산으로 향하는 길이니까, 같이 가줄 수 있어." "그것도 모르겠어요." 아이는 남자의 물음에 모른다고 말하는 답이 반절이었다. 아이는 정말로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눈치였다. 아이와 남자는 밤새 대화를 나누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잠을 청했다.
이른 아침, 둘은 마을을 떴다. 1시간가량 걸었을 무렵, 아이는 자신의 망토 속에서 목패와 종이 하나를 꺼내 남자에게 건네었다. "제 이름은 하나마키, 하나마키 타카히로에요. 이건 부모님이 믿을 수 있는 어른에게 보여주라고 했어요." 남자는 하나마키에게서 종이와 목패를 받아 목패에 쓰인 이름을 확인했다. 하나는 '하나마키 료', 다른 하나는 '하나마키 마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하나마키 부모님의 이름이었다. 목패가 어디 것인지는 송국의 사람인 남자가 보아도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궁정에서 사용된 것. 패의 뒷부분에는 화국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일반인이 사용하기엔 제법 정교하고 화려했다. 남자는 하나마키를 한 번 빤히 바라보고서 종이를 펼쳐 보았다.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자신들은 궁에 소속된 기사단이라 아이와 함께 피란을 떠날 수 없다고, 지금 이 글을 누군가가 읽을 때 즈음엔 아마 전쟁이 끝나 있을 거라고. 자신들은 살아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지만, 아이에게는 자신들이 다른 곳에 있다고 전해달라고 쓰여 있었으며, 추가로 하나마키가 지낼 수 있는 마을이 나와 있었다. 하지만, 글의 내용은 중간에 끊겨 있었다. 중요하게 전하고자 하는 건 다 나와 있었지만, 남자는 어딘가 께름칙하여 하나마키에게 종이는 이게 다였냐고 물었다. "제가 받은 건 그게 다였어요." 하나마키의 말에 남자는 아마 하나마키의 부모님이 까먹었을 거라 생각하였다. 남자는 걸으면서 하나마키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하나마키가 남자를 올려다보자, 남자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마츠카와 잇세이. 누군가의 보호자가 될 정도의 나이는 아니지만, 일단은 앞으로 네 보호자네." 마츠카와는 제 이름을 밝히며, 하나마키에게 종이에 쓰인 장소로 가야한다고 말하였다. 마츠카와가 하나마키의 머리를 쓰다듬은 것은 어린 아이가 짊어져야 할 짐이 무거울 것이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마츠카와와 하나마키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적국 약제사 마츠카와x피란민 하나마키
*전쟁 배경
*사망소재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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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떼거리의 피란민들이 국경 부근으로 피란을 떠나고 있었다. 누군가의 부모 뻘 되는 자들은 한 번 경험했던 일이기에 덤덤했던 것인지, 끔찍한 악몽이 다시 반복되었다는 사실에 충격 받은 것인지 체념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피란민들이 걷는 거리는 적막하기 그지없었고, 간혹 들리는 어린 아이들의 공포에 젖은 울음소리는 그 부모나 근처 사람에 의해 금세 잦아들었다. 제 가족의 손을 꼭 붙든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한 아이는 홀로 피란민들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짐처럼 보이는 물건은 있지도 않았고, 한 손에는 소중한 물건인 냥 꼭 쥐어진 목패 두 개만이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빵 한 조각만이 들려있었다. 얇은 천으로 된 망토의 모자 사이로 삐쭉 튀어나온 분홍빛 머리는 흔히 볼 수 있는 머리색은 아니었다. 많아 봤자 10살 남짓한 나이로 보이는 그 아이에게 빠른 피란민 행렬을 따라가기란 벅찬 일이었다. 잿빛으로 얼룩진 아이의 얼굴에서 유일하게 또렷한 색을 발하고 있는 녹색의 눈은 피란민들의 발끝을 향해 있었다. 놓쳐서는 안 된다는 얼굴을 하고 아이는 쉬지 않고 피란민 행렬을 뒤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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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松]제국과 화[花]국은 이웃한 나라였다. 송의 대륙 정벌을 위해 화를 침입하였다. 전쟁은 수년 간 이어졌으나, 송의 성급한 침입으로 인해 화를 정벌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다만, 전쟁의 장소가 되었던 화국은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군사력 및 국가 재정이 크게 하락하게 된 것. 차츰 화가 국력을 다시 회복하고 있을 무렵, 송에는 선왕이 죽으면서 제 2왕자가 반란을 일으켜 제 1왕자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왕위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아버지가 다 이루지 못한 정복 활동을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표적이 된 나라는 단연 화국이었다. 전쟁이 끝난지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전쟁이 일어난 것. 화국에 승산은 없었다. 화의 남성들은 대부분 강제로 징역되었고, 여성과 노인, 어린이는 송과 떨어진 국경 부근으로 피란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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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피란민 행렬은 다 피란을 떠난 것인지 아무도 없는 한 마을에 멈추어 서서 하룻밤을 묵었다. 아이는 입구 부근에서 잠을 청했는데, 눈을 뜨니 해가 중천에 있었다. 마을은 고요하고 싸늘했다. 사람을 찾기 위해 마을 곳곳을 뒤졌지만,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제 가족 챙기기 급급했던 피란민들은 혼자 잠들어 있는 아이를 챙길 여유 따위는 없었던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마을에 오뚝하게 서 있는 아이는 두 눈을 끔뻑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눈망울은 촉촉해지더니 이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엉엉 울지도 못하고, 한참 동안 아이는 숨죽여 끅끅 소리를 내며 울었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했던 아이는 이미 굳어 딱딱해진 빵을 입에 넣었다. 눈물 젖은 굳은 빵은 참 맛도 없었을 터였지만, 아이는 단숨에 다 먹어치웠다. 제법 오랜 시간 잤지만, 계속 울은 탓에 아이는 피곤함이 몰려왔다. 겨울이 아닌 것이 피란민들에게는 큰 행운이었지만, 가을은 얇은 천 하나만을 걸친 아이에게는 추울 수밖에 없었다. 추위에 떨며 아이는 잠에 들었다.
아이가 다시 눈을 뜬 것은 고소한 음식 냄새 때문이었다. 추위는 가시고, 아이의 몸에는 낯선 담요가 덮여 있었다. 아이는 담요를 들고 냄새의 출처를 따라 허름한 집 밖으로 나왔다. 아이의 눈앞에는 한 남자가 불을 피우며 음식을 하고 있었다. 시선이 느껴졌던 것인지 남자는 고개를 들어 아이를 쳐다보고서, 이내 미소 지었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음식 냄새에 이끌려 남자의 옆에 터벅터벅 걸어가서 앉았다.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스프를 그릇에 담아 아이에게 건네었다. 아이는 고맙다는 말할 틈도 없이 허기를 달래기 바빴다. 두어 그릇을 비운 아이는 그제야 남자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형, 송국 사람이죠?" 아이가 처음 꺼낸 말이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송의 사람인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았다. 답은 뻔했다. 성인 남자는 전부 전쟁을 하러 갔으니 화에서 몸이 멀쩡한 성인 남자를 보는 일은 전쟁이 일어나고 한 번도 없었다고.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서 잠시 생각하는 듯 보이다가 답했다. "전쟁은 끝났어." 아이는 슬프다든지, 기쁘다든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럼, 우리 나라에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거네요. 여기는 화국 궁정에서 엄청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닌데 전쟁 소리를 듣거나 군인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응, 뭐 그렇지. 아버지가 군인이야?" "몰라요. 부모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자세히 들은 적은 없어요." 남자는 아이의 부모님이 아마 전쟁에 참여했거나, 혹은 아이를 버리고 떠났다고 생각했다. "왜 여기 혼자 있어?" "피란민 무리를 따라 왔는데 자고 일어나보니 저만 남아있었어요. 형을 만나 다행이에요." "음.. 어디로 가는 중이었는데? 나도 어차피 화의 국경 근처 산으로 향하는 길이니까, 같이 가줄 수 있어." "그것도 모르겠어요." 아이는 남자의 물음에 모른다고 말하는 답이 반절이었다. 아이는 정말로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눈치였다. 아이와 남자는 밤새 대화를 나누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잠을 청했다.
이른 아침, 둘은 마을을 떴다. 1시간가량 걸었을 무렵, 아이는 자신의 망토 속에서 목패와 종이 하나를 꺼내 남자에게 건네었다. "제 이름은 하나마키, 하나마키 타카히로에요. 이건 부모님이 믿을 수 있는 어른에게 보여주라고 했어요." 남자는 하나마키에게서 종이와 목패를 받아 목패에 쓰인 이름을 확인했다. 하나는 '하나마키 료', 다른 하나는 '하나마키 마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하나마키 부모님의 이름이었다. 목패가 어디 것인지는 송국의 사람인 남자가 보아도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궁정에서 사용된 것. 패의 뒷부분에는 화국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일반인이 사용하기엔 제법 정교하고 화려했다. 남자는 하나마키를 한 번 빤히 바라보고서 종이를 펼쳐 보았다. 종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자신들은 궁에 소속된 기사단이라 아이와 함께 피란을 떠날 수 없다고, 지금 이 글을 누군가가 읽을 때 즈음엔 아마 전쟁이 끝나 있을 거라고. 자신들은 살아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지만, 아이에게는 자신들이 다른 곳에 있다고 전해달라고 쓰여 있었으며, 추가로 하나마키가 지낼 수 있는 마을이 나와 있었다. 하지만, 글의 내용은 중간에 끊겨 있었다. 중요하게 전하고자 하는 건 다 나와 있었지만, 남자는 어딘가 께름칙하여 하나마키에게 종이는 이게 다였냐고 물었다. "제가 받은 건 그게 다였어요." 하나마키의 말에 남자는 아마 하나마키의 부모님이 까먹었을 거라 생각하였다. 남자는 걸으면서 하나마키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하나마키가 남자를 올려다보자, 남자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마츠카와 잇세이. 누군가의 보호자가 될 정도의 나이는 아니지만, 일단은 앞으로 네 보호자네." 마츠카와는 제 이름을 밝히며, 하나마키에게 종이에 쓰인 장소로 가야한다고 말하였다. 마츠카와가 하나마키의 머리를 쓰다듬은 것은 어린 아이가 짊어져야 할 짐이 무거울 것이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마츠카와와 하나마키의 여정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