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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아카 전력] 사랑법
"반복"
*평범하게 연애하는 보쿠아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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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화면이 저 혼자 밝아졌다, 어둠을 되찾았다. 아카아시 케이지는 키보드 타이핑을 그만두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잠금 화면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는 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 위의 상단 바에는 메시지 알림이 떠있었다. 아카아시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조금씩 자리를 차지했다. 메시지를 보낸 주인공은 정해져 있으리라. 무얼 하고 있냐는 메시지와 보낸 의도를 알 수 없는 이모티콘이 함께 와있었다. 아카아시는 작업 중이에요, 라는 말과 함께 보쿠토 선배는요? 하고 되물었다. 아카아시가 자정까지 연락을 할 남자는 보쿠토 코타로, 이 사람뿐이었다. 난 이제 집 왔어. 오늘은 조금 늦었어. 그나저나 아직도 일 하는 중?! 채팅을 할 때 언제나 문장 하나하나 따로 보내는 보쿠토 덕에 아카아시가 잠시라도 휴대폰을 놓으면 화면이 여러 번 깜빡 거릴 때도 많았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서요. 훈련 때문에 피곤하실 텐데, 쉬세요.
 아카아시는 휴대폰 키패드를 빠르게 치며 답장을 하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보쿠토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시간이 지났을 줄도 몰랐으리라. 아카아시는 찌뿌듯한 몸에 기지개를 한 번 하고,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놓았다. 건조한 시야에 눈을 벅벅 비비다 손을 더듬어 안약을 찾고 있던 찰나에, 아카아시의 휴대폰 불빛이 꺼질 생각을 않고 계속해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다시 안경을 끼고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네, 네. 아카아시는 갑작스레 온 전화에 바로 받아서 귀에 가져다 대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아카아시의 귀에 울려 퍼졌다.
 "아니, 그게 씻으려고 하니까 갑자기 아카아시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해버렸어!"
언제나와 같이 들떠있는 목소리에 아카아시는 낮게 웃었다. 이것저것 겹치는 탓에 보름 째 서로를 보지 못해서 그 허전함을 채우는 건 목소리뿐이었다. 보쿠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대표로서 배구를 계속 해오고 있는 배구선수이고, 아카아시는 직장을 다니다가 반 년만에 퇴사하고 웹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조금씩 인지도가 쌓이고 있는 중이다. 자주 해외로 가는 보쿠토와 마감에 항상 쫒기는 아카아시였기에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아카아시는 아직 다 못 된 작업과, 보쿠토와의 통화 화면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이윽고 아카아시는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내일, 만날까요."
 "내일?"
 "네, 내일. 시간 되세요?"
 "당연히 되지, 오랜만에 보는 건데! 그치만 아카아시 시간 괜찮아?"
 "네. 모처럼이니까요."
 휴대폰 너머에서도 알 수 있는 평소보다 들뜬 보쿠토에 아카아시는 얼굴에 미소가 번져갔다. 마감은 하루 밤 새면 되니까, 라고 생각하며 아카아시는 보쿠토와의 전화를 이어나갔다. 한참동안 무얼 할 지 무얼 먹을 지에 대해 끊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었건만, 그대로 될 리가 없었다. 보쿠토는 제 마음에 드는 것이라면 애정 넘치는 눈빛을 뿜어내니까 할 수밖에. 아카아시도 그걸 알고 있어 시간 역시 넉넉하게 잡아두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대지에 낙엽들이 즐비한 날이었다. 순식간에 쌀쌀해진 날씨에 아카아시는 옷장에서 긴 코트를 꺼내입었다. 약속시간보다 5분 정도 일찍 도착할 수 있도록 서둘로 집을 나섰다. 만나기로 했던 역에 도착하자 아카아시의 시야에는 저를 향해 손을 붕붕 흔들고 있는 하얀 머리의 사내만 들어와있었다. 비슷한 디자인의 긴 코트. 보쿠토는 커플룩이라며 아카아시를 만나자마자 코트에 대해 떠들어댔다. 입고 오길 잘했다며 아카아시는 속으로 생각했다. 보쿠토는 그런 아카아시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카아시의 손을 붙잡고 출발했다. 이끌려가는 아카아시의 입가에는 미소가 퍼져있었다. 언제나와 똑같은 반복되는 데이트 패턴이지만, 아카아시에게는 그것도 행복이었다. 물론 보쿠토에게도. 그것은 그들만의 사랑법이었다.
Posted by Wint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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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자 전력] 갈림길
"너의 꿈 속에 나를 가두어 버렸다."
*다자이의 꿈속에 오다와 자신의 평범했던 날들이 나오고, 다자이가 현실과 꿈의 갈림길에 선 내용입니다.

-

 어둠으로 뒤덮힌 지는 좀 되었지만, 태양이 어둠을 비집고 올라오기에는 좀 이른 시각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잠에 빠져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잠에 빠져들지 못한다는 말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잠에 빠져들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는 말이 조금 더 맞다. 넓지 않은 방 안은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와 이불이 저들끼리 쓸리는 소리만이 울리고 있었다.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하던 다자이는 이윽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 거실로 나가 냉수를 들이켰다. 물을 한잔 더 떠서 방으로 돌아온 다자이는 선반 위에 있는 약봉지를 들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수면유도제였다. 비가 온 다음날마다 퀭해져서 오는 다자이에 아츠시가 잠을 못자면 약한 수면제를 먹어보는 게 어떠냐는 말에 한 통 받아온 것. 다자이는 약봉지를 이리저리 만지다 다시 내려놓고 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침대에 다시 누운 다자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다자이가 잠에 들지 못하는 이유는 본인도 알고 있었다.

 꿈속의 자신이 너무나도 행복해서.

 비가 오는 날마다 다자이는 악몽이 아닌 너무나도 행복한 꿈을 꾼다. 그 꿈의 주인공은 오다 사쿠노스케와 다자이 오사무였다. 다자이의 꿈에서 오다 사쿠노스케와 본인은 행복해했다. 언제나처럼 루핀에서 만났고, 다자이는 평범하게 오다와 이야기한다. 오다의 매운 카레를 다자이는 거부하고, 그런 다자이를 오다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꿈이었다. 이게 행복한 건가, 싶을 정도로 평범한 꿈. 다자이는 그 꿈을 꾸는동안 누구보다도 행복하지만, 그 꿈에서 깨어나면 누구보다도 불행해진다.

 차라리 그가 죽었던 그 장면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네만.

 다자이는 가장 떠올리기 싫어하는 기억이 꿈에 나오기를 빌 정도로 자신이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는 꿈을 싫어한다. 이미 세상과 이별을 고한 제 친구가 자신의 꿈에서는 살아있으니까. 마치 다자이의 꿈속에 영영 갇혀있는 것처럼. 다시는 볼 수 없는, 다시는 돌아 오지 않을 행복한 장면들을 보는 것은 끔찍한 것이었다. 다자이는 비가 오는 날에는 잠에 들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그 기억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문이 두 개 있는 좁은 공간에서 혼자 발버둥치다가, 어느쪽을 선택해도 끔찍한 건 매한가지였다. 오늘의 다자이는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일어났다. 조금 있으면 동이 튼다. 다자이는 행복했던 기억과 마주하는 것을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비오는 날 밤마다 다자이 오사무는 가시밭길뿐인 갈림길에 선다.
Posted by Wint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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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하나 전력] 사랑에 빠질 때 그 누구도 결말을 생각하진 않는다
"사랑, 이라니. 책에서만 존쟤하는 그런 감정을 나는 비웃었다."
*하나마키 독백
*약 네임버스AU

*****

사랑, 이라니. 책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감정을 나는 비웃었다. 아마도 내 시선은 다른 이들보다 몇십도 삐뚤어져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되먹지 못한 인간이라 생각했으니까. 유년시절 보았던 동화에서는 항상 사랑의 결실을 이루고 막을 내린다. 영원히 행복했습니다, 따위의 말과 함께. 아마 나는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의 결말은 초라했고, 누군가는 엉엉 울기도 했다. 서로 사랑하는 것보다, 오히려 한사람이 사랑하는 게 더 아름다워 보였다. 사랑은 누군가 짝사랑한 결과니까. 짝사랑을 시작한 사람이든, 그 사랑에 빠져든 사람이든 상처 입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는 마냥 행복해 보이는 사랑일지라도, 내게는 전혀 아니었다. 사랑을 갈구하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전하지도 않았다. 호감이 있는 상대라면, 짝사랑에서 끝. 그게 내 방식이었다.. 라고 생각했었을 텐데.

젠장할, 왜 이렇게 잘생긴 거야.

사랑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 좀먹히고 있는 기분이었다. 짝사랑은 아름답지도 않았고, 괴로웠다. 보는 사람만 아름다워 보이는 건가.

아니, 이게 사랑이긴 한 건가? 단순한 몽상가잖아.

조금 지난 일이다. 단순한 꿈이었다. 나는 그 꿈에 취했을뿐이고. 꿈에서는 한 남자가 나왔다. 그 남자는 나를 위한 사람이었다. 아니, 나였는지는 모르겠다. 그의 연인이었을 수도 있다. 그저 '내' 시점에서 진행된 연애 시뮬레이션과도 같았다. 나는 그 게임의 캐릭터에게 홀딱 반하고 만 것이었다. 꿈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감정은 남아있었다. 내가 이 남자를 좋아한다, 라는 감정.

단순한 사람이었다면 마음을 쉽게 접었을 일이었다. 하지만, 엄청나게 취향이었다. 얼굴이. 곱슬곱슬한 흑발, 쳐진 눈썹, 올라간 눈꼬리. 섹시하게 생긴 사람의 표본이었다. 지금껏 호감이 있었던 사람들과는 닮은 부분이 그다지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내가 반할 수밖에 없는 남자라고. 꿈은 드문드문 계속되었다. 새로운 꿈은 아니었고, 똑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었다. 반복되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캐릭터에 나는 빠진 것. 꿈에서 깨면 다시 보기 위해 잠에 들었다가, 그가 나오지 않으면 짜증내는 내가 한심했다. 내가 보던 그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를 꿈꾼 지 두 달이 지나고, 나는 내 사랑의 전부를 빼앗겼다. 어째서였지. 샤워를 하고 있는데, 어깨쪽 등에 희미한 한자가 쓰여있는 걸 보았다. 뭐지, 하고 빡빡 씻었지만 지워질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한자는 진해졌다.
마츠카와 잇세이.
한자는 이름을 가리키는 것이었고, 그 이름은 마츠카와 잇세이였다. 나는 단번에 알았다. 그 이름은 꿈속의 남자 이름이라고.

나는 책 속의 사랑을 비웃었다. 그러면서 사랑을 꿈꾸던 몽상가였다. 아마 지금 나는, 그 책의 주인공이 되어있다. 그리고 꿈 위에도 서있겠지. 사랑이 누군가가 짝사랑한 결과라면, 나는 그 결과를 보기 위해 이 남자를 사랑하려고 한다. 결말이 초라할지라도, 누군가가 엉엉 울지라도, 나는 그에게 사랑을 빼앗겼다. 이 사랑을 시작할 때 나는 결말을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이들이 그랬으니까, 그들은 행복했겠지.
Posted by Wint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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