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하나] 붉은 실
*사망소재 주의
*붉은 실은 인연인 사람과 이어준다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썼습니다.
*****
예로부터 붉은 실은 운명적인 인연과 이어준다는 전설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전설을 믿는 사람도 썩 많지 않고, 소설이나 드라마 따위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 즈음 되는 인물에게 운명 따위-라든지, 네 인생은 네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둥의 말을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운명이라고는 코빼기만큼도 믿지 않는 소년에게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
하나마키는 태어났을 적부터 왼쪽 소지에 붉디붉은 실이 칭칭 감겨져 있었다. 제게는 옅은 색의 붉은 실로 보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고리 모양의 흉터로 보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실의 색도 진하지 않았고,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거슬리지도 않았기에 하나마키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실은 짙어져갔고, 실이 향하는 방향은 일정했다. 하나마키는 따라가면 신기한 일이 생길까 싶어 실의 자국을 밟아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마키는 붉은 실의 전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붉은 실을 따라가면 제 운명의 연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 하나마키는 운명론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제 인연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니, 하나마키에게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나마키는 그때부터 아등바등 실을 없애려고 했다. 실을 가위로 잘라보기도 했고, 손으로 잡아당겨 보기도 했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마키는 붉은 실만 따라가지 않으면 거슬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 일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신경을 끄고 살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전설에 나오는 운명은 그리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하나마키가 성년이 되고 난 뒤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시작은 흐릿했다. 붉은 실도 옅었듯이. 그렇게 꿈을 꾸기 시작하고 나서 보름 정도 뒤에, 아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작은 아기가 꿈에 나타났다. 까만 머리칼이 듬성듬성 짧게 자라나 있었고, 울음소리는 대찼다. 평범한 애기였다. 하나마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꿈의 끝 무렵에, 하나마키는 아기의 소지에 제 것과 똑 닮은 실을 보았다. 하나마키는 그제야 이 꿈이 아직까지 손에서 떨어져나갈 생각을 않는 붉은 실과 연관된 것임을 알았다. 질긴 운명을 뒤로하고 잠을 자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던 하나마키였지만, 잠을 안 자고 버티는 건 기껏해야 삼일이었다. 체념하고 다시 잠에 든 후 일주일, 일주일동안 하나마키는 아이의 갓난아기 시절에 대한 꿈을 꾸었다. 돌잔치라든지, 처음 말을 했다든지, 처음으로 걷게 됐다든지. 그런 대부분의 아이들이 겪는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하나마키는 개꿈인가 싶었는데, 아이는 점점 성장했다. 갓난아기 시절을 다 꿈에 담자, 꿈은 하나마키에게 그 아이의 유년시절을 보여주었다. 유년시절의 꿈이 끝나자,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고를 반복했다. 하나마키는 꿈속에서 아이에 대해 사소한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이름은 마츠카와 잇세이. 좋아하는 것은 치즈 햄버그. 생일은 3월 1일. 키는.. 성장 중. 하나마키는 시간이 갈수록 생긴 거와는 다르게 좋아하는 것이라든지, 하는 행동에 제 나이에 꼭 맞는 마츠카와를 보고 꿈을 꾸는 것을 재밌어했다.
하나마키가 꿈을 꾸게 된 지 반 년이 되자 그의 꿈속에서 마츠카와는 성년이 되었다. 성년이 된 그날부터, 하나마키의 꿈은 조금씩 흐릿해졌다. 처음과는 반대로. 하나마키는 이에 의문점을 갖고 무작정 결심을 했다. 붉은 실의 흔적을 밟아 따라 가자고. 실은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다. 하나마키는 꿈의 기억에 의존하여 마츠카와를 찾아갔다. 동경에서 전철을 타고 미야기현의 센다이까지 찾아갔다. 하나마키는 전철에서 드문드문 자신이 붉은 실을 따라가야 하는 이유가 없다는 사실에 돌아갈까, 라며 생각했지만, 그의 발길은 계속해서 붉은 실을 향하고 있었다.
낮에 출발했건만, 전철역과 마츠카와가 있는 곳이 멀었기에 붉은 노을이 질 무렵에야 꿈에서 본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츠카와의 집. 꿈속에서 지겹도록 봐온 것이다. 하나마키는 초인종을 누르려 했으나, 곧 집이 완전히 비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히 집주인이 잠깐 외출한 게 아닌, 텅 비어있는 주인 없는 집이라는 것을. 확실히 붉은 실은 집 앞에서 끊기지 않았다. 하나마키는 붉은 실을 따라 터벅터벅 걸었다.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쭉 걷던 하나마키는 외진 곳까지 오게 되었다.
하나마키는 처음 온 장소였지만, 무슨 용도로 쓰이는 지는 알 수 있었다. 하나마키는 왜 꿈이 점점 흐릿해졌는지 알게되었다. 하나마키는 그날 처음으로 붉은 실이 가리키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언덕 아래에 있는 꽃집으로 향했다.
나만 아는 사람이니, 거창한 것은 필요없겠지.
하얀국화 한 송이와 그 겉에는 하나마키가 꿈속에서 자주 보았던 안개꽃으로 감싸져 있는 작은 꽃다발을 하나 부탁했다.
이게 지금 뭐하는 거냐..
하나마키는 깊게 한숨을 한 번 쉬고, 다시 언덕 위로 올라갔다. 언덕을 오르자, 보이는 것은 수많은 묘와 세상과 이별을 고한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나마키는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붉은 실을 따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 실은 한 묘 앞에서 뚝 끊겨있었다.
마츠카와 잇세이
그리 쓰여 있었다. 꿈속에서 지독하리만큼 자주 들은 이름이었다. 하나마키는 쭈그려앉아 꽃을 올려놓고 그 이름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교복 입고 안 다니면 고등학생이라 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지 않았냐, 치즈 햄버그가 그렇게 맛있냐, 처진 눈썹 처음에는 웃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매력인 것 같다, 등의. 사소한, 정말 사소한. 하나마키가 만약 마츠카와를 만난다면 묻고 싶었던 것이나, 말하고 싶었던 것을 쭉 늘어놓았다. 그렇게 제법 오랜 시간을 앉아 있던 하나마키는 무릎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고 천천히 일어났다.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에게 작별의 인사를 고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는 하나마키의 손가락에는, 붉은 실은 사라지고 그 흔적만 남아있었다. 하나마키는 20년 남짓한 시간동안 자신을 귀찮게 하였던 것이 사라져서 제법 어색해했다. 소지를 매만지며, 하나마키는 전철에 올라탔다. 하고자 했던 일을 이루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와 하나마키는 금세 잠들었다.
하나마키의 꿈속에서는 더이상 나오지 않았던 마츠카와가 나왔다. 꿈은 그의 끝을 보여주었다. 잔인하고, 잔인했다. 여태까지 분명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하나마키는 고통에 움찔댔다. 하지만, 꿈에서 깨려고 하지는 않았다. 마츠카와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책의 결말을 읽고 싶었기에.
여린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다가, 이내 촉촉히 젖어왔다. 눈물이 양 뺨을 따라 내려왔다. 눈물이 났던 것은 왜일까. 단순히 죽음을 보았기 때문에, 일까. 꿈의 결말이 맺어진 것인지 하나마키의 눈물은 조금씩 멎어갔다. 아직은 흐르고 있는 눈물을 뒤로 한 채 하나마키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이야기의 결말은 아무도 모른다.
*사망소재 주의
*붉은 실은 인연인 사람과 이어준다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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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붉은 실은 운명적인 인연과 이어준다는 전설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전설을 믿는 사람도 썩 많지 않고, 소설이나 드라마 따위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 즈음 되는 인물에게 운명 따위-라든지, 네 인생은 네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둥의 말을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운명이라고는 코빼기만큼도 믿지 않는 소년에게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
하나마키는 태어났을 적부터 왼쪽 소지에 붉디붉은 실이 칭칭 감겨져 있었다. 제게는 옅은 색의 붉은 실로 보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고리 모양의 흉터로 보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실의 색도 진하지 않았고,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거슬리지도 않았기에 하나마키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실은 짙어져갔고, 실이 향하는 방향은 일정했다. 하나마키는 따라가면 신기한 일이 생길까 싶어 실의 자국을 밟아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마키는 붉은 실의 전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붉은 실을 따라가면 제 운명의 연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 하나마키는 운명론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제 인연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니, 하나마키에게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나마키는 그때부터 아등바등 실을 없애려고 했다. 실을 가위로 잘라보기도 했고, 손으로 잡아당겨 보기도 했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마키는 붉은 실만 따라가지 않으면 거슬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 일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신경을 끄고 살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전설에 나오는 운명은 그리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하나마키가 성년이 되고 난 뒤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시작은 흐릿했다. 붉은 실도 옅었듯이. 그렇게 꿈을 꾸기 시작하고 나서 보름 정도 뒤에, 아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작은 아기가 꿈에 나타났다. 까만 머리칼이 듬성듬성 짧게 자라나 있었고, 울음소리는 대찼다. 평범한 애기였다. 하나마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꿈의 끝 무렵에, 하나마키는 아기의 소지에 제 것과 똑 닮은 실을 보았다. 하나마키는 그제야 이 꿈이 아직까지 손에서 떨어져나갈 생각을 않는 붉은 실과 연관된 것임을 알았다. 질긴 운명을 뒤로하고 잠을 자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던 하나마키였지만, 잠을 안 자고 버티는 건 기껏해야 삼일이었다. 체념하고 다시 잠에 든 후 일주일, 일주일동안 하나마키는 아이의 갓난아기 시절에 대한 꿈을 꾸었다. 돌잔치라든지, 처음 말을 했다든지, 처음으로 걷게 됐다든지. 그런 대부분의 아이들이 겪는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하나마키는 개꿈인가 싶었는데, 아이는 점점 성장했다. 갓난아기 시절을 다 꿈에 담자, 꿈은 하나마키에게 그 아이의 유년시절을 보여주었다. 유년시절의 꿈이 끝나자,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고를 반복했다. 하나마키는 꿈속에서 아이에 대해 사소한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이름은 마츠카와 잇세이. 좋아하는 것은 치즈 햄버그. 생일은 3월 1일. 키는.. 성장 중. 하나마키는 시간이 갈수록 생긴 거와는 다르게 좋아하는 것이라든지, 하는 행동에 제 나이에 꼭 맞는 마츠카와를 보고 꿈을 꾸는 것을 재밌어했다.
하나마키가 꿈을 꾸게 된 지 반 년이 되자 그의 꿈속에서 마츠카와는 성년이 되었다. 성년이 된 그날부터, 하나마키의 꿈은 조금씩 흐릿해졌다. 처음과는 반대로. 하나마키는 이에 의문점을 갖고 무작정 결심을 했다. 붉은 실의 흔적을 밟아 따라 가자고. 실은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다. 하나마키는 꿈의 기억에 의존하여 마츠카와를 찾아갔다. 동경에서 전철을 타고 미야기현의 센다이까지 찾아갔다. 하나마키는 전철에서 드문드문 자신이 붉은 실을 따라가야 하는 이유가 없다는 사실에 돌아갈까, 라며 생각했지만, 그의 발길은 계속해서 붉은 실을 향하고 있었다.
낮에 출발했건만, 전철역과 마츠카와가 있는 곳이 멀었기에 붉은 노을이 질 무렵에야 꿈에서 본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츠카와의 집. 꿈속에서 지겹도록 봐온 것이다. 하나마키는 초인종을 누르려 했으나, 곧 집이 완전히 비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히 집주인이 잠깐 외출한 게 아닌, 텅 비어있는 주인 없는 집이라는 것을. 확실히 붉은 실은 집 앞에서 끊기지 않았다. 하나마키는 붉은 실을 따라 터벅터벅 걸었다.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쭉 걷던 하나마키는 외진 곳까지 오게 되었다.
하나마키는 처음 온 장소였지만, 무슨 용도로 쓰이는 지는 알 수 있었다. 하나마키는 왜 꿈이 점점 흐릿해졌는지 알게되었다. 하나마키는 그날 처음으로 붉은 실이 가리키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언덕 아래에 있는 꽃집으로 향했다.
나만 아는 사람이니, 거창한 것은 필요없겠지.
하얀국화 한 송이와 그 겉에는 하나마키가 꿈속에서 자주 보았던 안개꽃으로 감싸져 있는 작은 꽃다발을 하나 부탁했다.
이게 지금 뭐하는 거냐..
하나마키는 깊게 한숨을 한 번 쉬고, 다시 언덕 위로 올라갔다. 언덕을 오르자, 보이는 것은 수많은 묘와 세상과 이별을 고한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나마키는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붉은 실을 따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 실은 한 묘 앞에서 뚝 끊겨있었다.
마츠카와 잇세이
그리 쓰여 있었다. 꿈속에서 지독하리만큼 자주 들은 이름이었다. 하나마키는 쭈그려앉아 꽃을 올려놓고 그 이름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교복 입고 안 다니면 고등학생이라 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지 않았냐, 치즈 햄버그가 그렇게 맛있냐, 처진 눈썹 처음에는 웃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매력인 것 같다, 등의. 사소한, 정말 사소한. 하나마키가 만약 마츠카와를 만난다면 묻고 싶었던 것이나, 말하고 싶었던 것을 쭉 늘어놓았다. 그렇게 제법 오랜 시간을 앉아 있던 하나마키는 무릎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고 천천히 일어났다.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에게 작별의 인사를 고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는 하나마키의 손가락에는, 붉은 실은 사라지고 그 흔적만 남아있었다. 하나마키는 20년 남짓한 시간동안 자신을 귀찮게 하였던 것이 사라져서 제법 어색해했다. 소지를 매만지며, 하나마키는 전철에 올라탔다. 하고자 했던 일을 이루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와 하나마키는 금세 잠들었다.
하나마키의 꿈속에서는 더이상 나오지 않았던 마츠카와가 나왔다. 꿈은 그의 끝을 보여주었다. 잔인하고, 잔인했다. 여태까지 분명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하나마키는 고통에 움찔댔다. 하지만, 꿈에서 깨려고 하지는 않았다. 마츠카와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책의 결말을 읽고 싶었기에.
여린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다가, 이내 촉촉히 젖어왔다. 눈물이 양 뺨을 따라 내려왔다. 눈물이 났던 것은 왜일까. 단순히 죽음을 보았기 때문에, 일까. 꿈의 결말이 맺어진 것인지 하나마키의 눈물은 조금씩 멎어갔다. 아직은 흐르고 있는 눈물을 뒤로 한 채 하나마키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이야기의 결말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