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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하나 전력] 장마
"장마"

*****

나흘 전부터 비가 쉼 없이 내리고, 날씨는 지독하도록 습하다. 장마가 시작된 것이다. 여름이 왔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리는 듯이 비는 거세게 쏟아부었다. 하늘 또한 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잿빛이었다. 장마를 끔찍하게 증오한다. 질척하게 흐르는 비와 함께 많은 것들이 흘러갔다. 소중한 기억과 끔찍한 기억도 말이다.

꾹꾹 눌러놓았던 기억들이 비를 보고 있자니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역겨웠다. 내가 미친 듯이 증오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기억이 있고 그렇지 못한 기억이 있다. 잊지 못한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날, 우리는 차를 타고 있었다. 비가 왔고, 도로는 미끄러웠다. 빗물이 고여있는 곳에서 미끄러져 차가 전복되었다. 눈을 떴을 때는 병원 냄새가 코끝을 찡하게 했다. 차가 뒤집힌 것치고는 멀쩡했다. 제법 괜찮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런데, 한 가지가부족했다. 바로 옆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었다. 나중에서야 들었는데 내가 멀쩡했던 것은 나를 지켜주었던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켜주지도 못할망정 지켜졌다.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 했다. 나만 살아있었다. 나만 여기 있었다. 온갖 죄책감들이 나를 덮쳐왔었다.

장마가 가고, 여름이 갈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삶을 붙잡고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끔찍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었지만, 이러고 있어서는 나를 구해준 것이  헛수고가 된다는 생각에 다시 일어났다. 이 감정이 무뎌지는 데에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서야 매년 장마철만 되면 찾아오는 이 기억도 이제는 꽤나 덤덤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함께하는 여름은 오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네 기억을 껴안고는 네가 나를 바라보았을 때, 행복할 수 있도록 최고의 여름을 보낼 것이다.


사랑해,
잇세이


Posted by Wint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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