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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하나 전력]
"부르지 않으려 기억하는 이름이 있다."

*사망소재有
*하나마키가 죽고 난 뒤 마츠카와의 이야기입니다.

-

 “150엔입니다.”
 바지 주머니에서 짤랑이던 동전들을 꺼내 손바닥에 펼쳐보았다. 10엔짜리 일곱 개. 쯧, 혀를 찼다. 마이 안주머니에서 거뭇한 지갑을 꺼내 천 엔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봉투에 담아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봉투가 필요하냐는 점원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고작 맥주 한 캔인데 뭐, 라고 생각했다. 거스름돈과 맥주를 받은 나는 편의점의 창가자리로 향했다. 창문에 붙어있는 바 테이블 형식의 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맥주 캔을 땄다. 경쾌한 소리가 짧게 울리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맥주를 한 모금 입에 털어 넣었다. 쓴 향이 입안에 그득히 퍼졌다. 누가 술이 달면 어른이 된다고 했는가. 나이는 어느새 100세 인생의 3할을 앞두고 있는데, 어른은 대체 언제 될 생각인지. 쓴 맛에 얼굴을 찌푸리며 먹다보니 어느새 캔이 제법 가벼워졌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들어 창문 밖을 보았다. 창문을 타고 빠르게 흘러내리는 빗물 탓에 시야에 필터 하나를 끼얹은 것 같은 형체로 보였지만, 띄엄띄엄 바깥 구경하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금요일 오후 3시에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은 썩 많지는 않았다. 정말 몇 안 되는 귀가부 고교생이 띄엄띄엄 보였고, 정장을 입고 휴대폰을 귀에 댄 채 바삐 걸어가는 회사원도 몇 있었다. 우산을 잊은 것인지 비를 피해 달려가는 사람도 한둘 보였다.
 일상이었다. 그들에게는. 평일 오후에 거리에 나오면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 그렇지만 무늬 하나 없는 까만 넥타이에 까만 정장을 입고 편의점에서 맥주를 대낮에 마시고 있는 사람은 쉽게 보긴 힘들지. 그렇겠지. 일단 나도 잘 보지 못했으니까. 점원과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편의점에서 나는 이따금씩 느껴지는 점원의 시선을 이상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얕게 남아 찰랑거리는 맥주를 쓰레기통에 버리고서 편의점을 나왔다.
 우산을 펼치고 나서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하고 생각했다. 집에 쌓인 우산 중 하나를 아무렇게나 들고 나왔는데 그마저도 검정색이었다. 갈색 정도가 좋았을 텐데. 지나가던 사람이 멈칫해도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길을 따라 걸었다.
 십여 분을 걷다 보니 익숙한 작은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꽃내음이 짙게 베여왔다. 주머니 두 개가 고작인 말끔한 앞치마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익숙한 남자가 나를 반겼다.
 "아, 마츠카와씨. 오랜만이에요."
 작은 인사를 건넨 그는 흰 꽃다발을 내밀었다. 감사인사를 하고 꽃집을 나섰다. 쭉 흰색이었다. 조문을 가면 다른 색이 이따금씩 섞인 것을 빈번하게 볼 수 있지만 나는 계속 흰색을 고집했다. 정확히는 내가 아닌 그 녀석이지만. 꽃은 여러가지 색이 섞인 것도 예쁘지만 한 가지 계열로 모아둔 게 제일이라고 십수 번은 말했을 터이다. 국화만 있는 게 정석이지만 몇 년 전부터는 장미나 안개꽃 등을 넣기 시작했다. 그 녀석이라면 하나만 계속 준다고 지겨워 할 것 같아서.
 제법 걸었다. 신사 하나와 학교 두 개를 지나칠만큼. 분위기가 밝지만은 않은 공원이 눈에 띄었다. 묘원이었다. 공원에 들어선 나는 쭉 걸어가서 끝자락 즈음에 멈춰섰다. 이 녀석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두고간 꽃이 몇 다발 놓여있었다. 우리가 좋아했던, 사랑했던 소년을 청년이 되어 만나러 온. 나도 마찬가지였다. 준비해온 흰 꽃다발을 놓았다.
 "오랜만이야."
 이름 여덟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지만, 나는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긴 시간동안 무뎌졌고, 추억들을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지만 나는 그것만은 할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이 감정이 그 이름을 꺼내면 북받쳐 올라올 것 같았기에.
 하나마키 타카히로, 나는 네 이름을 부르지 않으려 기억한 지 7년이 되는 날을 맞이했다.
Posted by Wint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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