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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아카 전력] 눈 내리는 계절

"계절"

*평범하게 연애하는 보쿠아카

-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여름이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알록달록한 단풍은 바닥에 즐비했다.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지고 눈이 내리는 계절이 찾아왔다.

다녀오겠습니다.”

아카아시 케이지는 운동화를 고쳐 신고 집을 나섰다. 겨울 코트를 입었음에도 아카아시는 손을 주머니에 꼭 넣고 학교가 있는 쪽으로 걸었다. 주말 아침의 학교로 가는 길은 정말이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아카아시는 그대로 학교로 쭉 가지 않고 골목길로 길을 샜다. 그렇게 십여 분을 걷다가 익숙한 사람의 형체를 보고 멈춰 섰다. 그는 아카아시를 발견한 것인지 고개를 돌려 활짝 웃으며 손을 붕붕 흔들었다.

, 케이지!”

보쿠토 코타로. 아카아시의 학교 선배였고, 이제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아카아시는 입에 미소를 머금고 보쿠토에게 다가갔다. 어른의 세계가 조금 묻어난, 그럼에도 고등학교의 모습이 겹쳐져 보이는. 그런 보쿠토였다.

부엉이처럼 쭈뼛쭈뼛 항상 세우는 것을 고수했던 머리스타일은 이제 이마를 완전히 덮는 평범한 머리칼이 되어 있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머리를 내리고 왔을 때 당혹스러운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조금의 벽이 생긴, 제가 알던 보쿠토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겠지.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졌고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어떤 모습이 되던 여전히 좋아했다. 그럼에도 성년과 미성년의 벽은 존재하지 않을 리 만무했고, 아카아시는 꾸준히 그것을 의식했다. 부수고 싶어도 부술 수 없는, 그런 벽을 아카아시는 끔찍이도 싫어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부 활동은 고작 이년 만에 끝이 났고, 보쿠토는 학교를 졸업했다. 원할 때 만날 수 있으니 눈물이 날만큼 슬프지는 않았지만, 보쿠토의 빈자리가 아카아시에게는 누군가 구멍을 뚫어놓고 간 것처럼 컸다. 그것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고, 보쿠토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시기에는 조심스러웠다.

그런 나날들도 지나가고 이제 하나의 계절만 지나가면 아카아시가 졸업을 하는 계절이 온다. 보쿠토가 제게 보여주던 졸업장을 이제 자신이 받을 날이 오게 된다. 아카아시는 드디어 벽을 부술 수 있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자신과 보쿠토에게 고교 생활의 전부였던 배구부가 이제는 정말 추억 속으로 가라앉게 되는 것이다. 아카아시는 그 건에 대해 내심 속으로 신경 쓰고 있었고, 보쿠토 역시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보쿠토가 졸업을 하고 성년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변한 것은 생각보다 많았다. 아카아시가 이따금씩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고, 보쿠토는 그것을 잘 받아주었다. 조금씩 변화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적응하며 그것조차 좋아하고자 노력하고 있기에 보쿠토와 아카아시는 여전히 봄의 나라에 살고 있다.

어디 갈래?”

오랜만이니까, 선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요.”

으음... ... 일단 뭐 먹으면서 생각하자.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아.”

보쿠토 다운 대답이었다. 아카아시는 웃으며 그러자고 했다. 둘은 자주 가던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보쿠토는 카페라떼에 휘핑크림을 추가했고, 아카아시는 시럽을 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서로 커피를 마시는 취향은 정말 달라서 커피만큼은 함께 하지 못하겠다는 말도 나올 정도였다. 보쿠토가 먼저 아카아시의 짐을 들고 창가자리에 앉았고, 아카아시는 커피를 받아 보쿠토의 맞은편에 앉았다. 보쿠토는 달달한 라떼에 빠져 생각이라고는 하지 않고 있는 듯 보였다. 보다못한 아카아시가 입을 열었다.

갈 곳, 정해야죠.”

보쿠토는 그제서야 자신들이 카페에 온 이유를 기억한 듯 했다. 아카아시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눈치를 보며 머리를 굴렸다. 잔이 반 즈음 비었을 무렵 보쿠토가 생각난 듯 눈을 반짝였다.

가고 싶은 곳 생겼어!”

, . 어딘데요?”

그건 비밀. 일단 가자.”

“ ”

아카아시는 무어라 잔소리할 틈도 없이 어서 커피를 마시라는 재촉을 받았다. 커피를 다 마시자마자 보쿠토의 손에 이끌려 카페를 나온 아카아시는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다시피 따라갔다. 보쿠토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평범한 중심가 부근이었다. 무슨 특별히 기발한 것이라도 생각났나 싶었지만 별 거 없었다. 평소와 비슷한 데이트 코스였다.

이제 두 개 남았어!”

해가 뉘엿뉘엿 질 준비를 시작할 때 보쿠토는 이제 두 개가 남았다며 아카아시를 데리고 갔다. 첫 번째는 배를 채우는 것이었다. 배고플 때가 되긴 됐지, 하며 아카아시는 수긍했다.

이제 남은 하나는 대체 뭔가요.”

배를 든든하게 채운 아카아시가 보쿠토에게 물었다. 보쿠토는 씩 웃으며 아카아시를 중심가 쪽으로 이끌었다. 시내의 사거리에 다다르자 아카아시의 시야에는 거대한 트리가 들어왔다. 어두컴컴한 하늘에 반짝반짝한 미니 전구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직 크리스마스는 아니지만, 그때는 우리 여행 가니까. 트리를 못보면 크리스마스를 보낸 것 같지가 않을 것 같아서.”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손을 맞잡고 트리를 보며 말했다. 아카아시는 멍하니 보쿠토를 응시하다가 그게 뭐냐며 이윽고 웃음을 터트렸다. 보쿠토도 따라 웃었다.

눈 내리는 계절의 아름다운 밤이었다.

Posted by Wint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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